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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난 류현진-김광현, 그들이 나눈 야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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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숑숑 작성일20-08-14 13:02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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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 보러 왔어요. 우리 형~”

주피터에 머물고 있는 김광현이 류현진의 집(더니든)에 방문하기로 한 날. 류현진은 김광현이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시계를 들여다보고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현관문을 열어 밖을 내다봅니다. 문을 열어 놓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그만큼 기다리고 고대했던 시간이라는 의미. 비시즌 때 함께 개인 훈련을 할 만큼 친한 사이지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후로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캠프 시설인 주피터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캠프 시설이 위치한 더니든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30분 거리.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중단이 됐지만, 플로리다에 남아 개인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류현진과 김광현. 개인 훈련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김광현이 직접 이동했습니다.


현관문을 열어 놓고 김광현을 기다리던 류현진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고, 주차를 하고 자동차에서 내리던 김광현은 “우리 형 보러 왔어요. 우리 형~”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3월 말에 세인트루이스로 이동할 예정인 김광현은 “플로리다를 떠나기 전에 현진이 형은 꼭 만나고 싶어서 더니든에 왔다”라고 전했습니다. 류현진은 김광현을 위해 집 밥을 준비했습니다. 통역과 단둘이 생활하는 김광현이 한식을 자주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주피터와 더니든의 구단 캠프 시설에서 홀로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 말문이 터졌습니다. KBO 대표 투수였던 두 선수의 대화를 정리했습니다.

# 오랜 인연, 친한 형 동생 사이

Q. 류현진과 굉장히 친해 보이는데 언제부터 친분이 있었나?

김, “워낙 현진이 형과는 자주 만났어요. 청소년 대표팀 때부터 함께 나간 대회도 많았고, KBO에서도 자주 만났고요. 그리고 내가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정되고 개인 훈련을 함께 했는데, 그때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아요. 이전에도 친하긴 했는데,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거죠.”

Q. 청소년 대표팀 이야기가 궁금하다.

김, “청소년 대표팀으로 아시안 게임에 나갔었는데, 그때 나 때문에 졌잖아요.”

류, “왜 너 때문이야~ 전혀 아니지~”

김, “그때 함께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가 대단했어요. 김현수, 류현진, 강정호, 이재원, 민병헌 등 지금까지 야구하는 사람이 많죠. 다들 3학년 형들이었고, 나만 2학년이었어요. 대회도 대회지만, 그 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현진이 형이 한화로 입단 한 사실이에요. 롯데 갈 줄 알았거든요. 그때 현진이 형이 한화로 가는 거 보고 다들 안쓰럽게 여겼어요. (웃음)”

류,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 한화에 갔으니 지금의 류현진이 있는 거지. 아암~”

Q. 미국에 와서 보니 류현진이 조금 달라 보이는 부분도 있나?

김, “조금 전에 영어로 막 이야기하는데, 정말 달라 보이더데요? 언론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듣고, 영어를 진짜 못하는 줄 알았는데, 완전 딴 사람으로 보였어요.”

류, “야~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김, “봉주르~만 하는 줄 알았지. (웃음)”


Q. 베이징 올림픽 때 원투펀치였는데, 제일 생각이 나는 게 있다면?

김, “막내였으니까, 현수 형, 현진이 형이랑 같이 빨래했던 게 가장 많이 생각나요. 베이징 때는 호텔에서 생활하지 않았고, 지금은 선수촌에서도 빨래를 다 해주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때는 막내들이 빨래를 담당했었죠.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에 빨래방이 있었는데, 셋이서 매일 빨래했어요. 고생했던 순간이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거죠.”

류, “음식 배달도 많이 했잖아(웃음).”

김, “맞아요. 선수촌 식당에 400미터 트랙처럼 엄청 컸어요. 맥도날드, 양식, 일식 등 식당이 있는데, 형들 햄버거 주문받아서 배달했던 기억이 있어요.”

김, “야구적으로 이야기하면 2008년 8월에 이어 2009년 3월에도 WBC를 했기 때문에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성적도 정말 좋았고요. 현진이 형이 미국 진출이 가능했던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베이징 올림픽이라고 생각해요. 완투, 완봉을 기록했는데, 당시 야구 관계자들이 봤을 땐 미국 대표팀보다는 캐나다 대표팀이 강하다고 평가했었거든요. 그런 팀을 상대로 1-0 완봉승을 거뒀으니, 말 다 했죠. 대표팀 경기에서 완투, 완봉을 하고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하는 형을 보면서 정말 야구선수로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Q. KBO에서 류현진과 김광현은 어떤 관계였나?

김, “프로에 입단하던 해에 내가 계약금을 가장 많이 받았고, 1년 선배인 현진이 형과 비교되고 대결 구도로 형성됐던 것 같아요. 근데 당시 류현진은 신인 때부터 정말 최고로 잘하는 선수였잖아요. 제가 프로 입단할 때, “류현진만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질문이거든요. 그때 구단 직원들이 무조건 자신 있게, 대답해라고 했고, 내 딴에는 여유 있게 대답한다고 했는데, 그게 크게 이슈가 됐어요. 마치 제가 현진이 형을 디스 한 것 같은 늬앙스였나 봐요. 그때 제가 “현진이 형은 고등학교 때 보기도 해서 던지다 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던 것 같아요. 주눅 들지 않고, 심플하게 다가가면 될 것 같다는 의미로 했는데, 기사가 나오고 욕도 많이 먹었죠. (웃음)”


Q. 라이벌 구도가 자주 형성되긴 했지만, 맞대결은 한 번도 없었다.

류-김, “사실 우리는 정말 신경 쓰지 않았어요. 투수들은 타자를 신경 쓰지 상대 투수를 신경 쓰지는 않으니까요. 근데 2010년에 딱 한 번 맞대결 기회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우천 취소로 성사가 안됐었죠.

김, “개인 타이틀은 현진이 형을 따라갈 수가 없었죠. 그런데 2008년도는 제가 앞섰어요. 우리 팀이 잘 해서 이득 본 부분이 많죠. 다승, ERA, 탈삼진 부분에서 1등을 하고 있었는데, (윤)석민이 형이 등장하면서 ERA를 내주게 됐죠. 그때 석민이 형이 부상당해서 쉬고 있다가 복귀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하면서 ERA 1위로 올라가더라고요. 그때 제 기억으로는 0.03 정도 차이가 났었거든요. 내가 ERA 1위로 올라가려면 4이닝 무실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틀 전에 던지고 4이닝을 다시 던진다는 건 부상 우려가 있어서 안 던졌죠. 석민이 형이 나오기 전까지는 3관왕(다승, ERA, 탈삼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당시 SK는 공공의 적이었어요. 그때 다들 했던 이야기가 한화는 “현진이 형이 던지지만 않으면 이긴다”였어요. 정말이에요. 우리가 롯데, 한화랑 붙으면 16게임 중 14승 2패 기록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진이 형은 예외였죠.”

김광현은 2008년도를 이야기했지만, 이외에는 류현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라고 말하며 선배이자, 형인 류현진을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 류현진은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각자 위치에서 잘 했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훈훈한 말도 잠시, 다시 친한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김광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류현진을 힐끔 쳐다보며 말합니다. “저는 우승 반지가 4개나 있어요.”

이에 류현진은 “그 반지 얼마나 하디? 얼마짜리야?”라며 누가봐도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그런데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하니, “에이~ 뭐 그러면..”이라고 말을 끝을 흐립니다. 하지만 분명 부러움의 목소리였습니다.

김, “형~ 우승 반지는 가격으로 따질 수 없죠”라며 반격을 합니다. 류현진이 KBO에서 개인 타이틀은 앞섰지만, 딱 하나 부족했던 게 바로 우승 반지. 김광현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닮은 꼴 미국 진출, 그리고 첫해 스프링 캠프

Q. 두 선수 모두 미국 진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 “아휴~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류, “저도 구단에서 한 번에 허락을 받은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당시 여론이 류현진을 미국으로 보내주라고 형성이 좀 됐는데, 김응룡 감독님은 현진이 보내면 우리팀 마운드는 누가 지키냐라는 생각이셨죠.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건, 추신수 형과 러닝맨 촬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라고요. 모르는 번호라서 받지 않았는데, 단장님 전화라고 해서 받았어요.”

“단장님이 “진짜 미국 갈 마음이 있냐”라고 물으셔서, “전 미국 꼭 갈 겁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했고요. 그랬더니 미국 가고 싶으면 지금 당장 대전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녹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요? 못 갑니다”라고 말씀드리니까 “너는 무슨 배짱으로 그러냐?”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웃음)”

김, “형도 긴박하게 진행됐네요.”

류, “근데 또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습니다. “포스팅 비 얼마면 안 갈래?”라고 물어보시길래, “1000만 달러 밑이면 안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정말 30초였던 것 같아요. <한화, 포스팅 금액 1000만불 이상이면 류현진 미국 진출 전격 허용>이라고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진짜 완전 깜짝 놀랐어요. 전화 끊고 기사 나오기까지 30초였던 것 같아요. 이미 구단에서도 준비를 다 하고 있었던 거죠.”

Q. 포스팅 금액 1000만 달러 받을 자신이 있었던 건가?

류, “에이전트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었죠. 1000만 달러는 무조건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1500만 달러라고 말하기엔 살짝 아슬아슬했고, 500만 달러는 너무 적은 것 같고, 그래서 1000만 달러라고 말씀드렸어요.”

Q. 그렇게 미국에 오게 됐는데, 투수 후배가 또 미국에 진출하니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류, “좋죠. KBO 출신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또 오게 되니 전 정말 좋아요. 광현이 시범 경기 영상도 다 챙겨 봤어요.”


Q. 영상이나 기사를 다 챙겨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류, “엄청 빨리 던지던데요? (웃음). 시범경기하는데 95마일을 찍더라고요. (옆에 있던 김광현을 바라보며) 시범경기에서 왜 95마일을 던지고 그려~ 난 90마일 가까스로 던지는데.. (웃음)”

김, “한 번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현진이 형과는 다르잖아요. 이번에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니까..”

류, “하긴 저도 첫 해에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보여주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요. 저도 첫해에는 선발 로테이션만 잘 지키면 몸값 한다는 소릴 들었거든요. 지금 광현이가 정말 잘 보여준 거죠.”

김, “시범경기 동안에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어쨌든 가능성은 보여준 거니까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못 던진 상황에서 캠프가 중단됐다면 마음이 많이 조급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가능성을 보여줬고, 평가도 좋아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류현진과 김광현의 만남 2편에서는 <어깨 수술과 재활>, 그리고 <그들만의 천적>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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